유니폼 전쟁: 의류 계약이 테니스 비즈니스를 지배하는 방식
스포트라이트 아래 코트에 들어서는 한 선수를 떠올려보자. 전 세계가 지켜보는 것은 그의 플레이만이 아니다. 유니폼의 색, 폴로 셔츠의 디자인, 가슴에 정교하게 배치된 로고 역시 시선의 대상이다.
이 스타일 선택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한 브랜드의 세계관을 구현한다.
이 단순한 몸짓 뒤에는 강력한 경제 전략이 숨어 있다. 각 랠리가 마케팅 기회로 전환되고, 일부 남자·여자 선수들은 상업 전략의 살아 있는 화신으로 탈바꿈한다.
의류 계약: 테니스의 새로운 전략적 쟁점
오늘날 유니폼은 그 자체로 강력한 마케팅 무기다. 롤랑가로스 결승에서 착용된 한 벌의 옷이 라인 전체의 판매량을 폭발적으로 올릴 수 있고, US오픈에서 등장한 예상 밖의 컬러가 한 시즌 전체를 상징하는 비주얼 코드가 되기도 한다.
브랜드들이 수백만 달러를 쏟아 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라임 타임에 중계되는 한 경기는 곧 전 세계적인 광고 캠페인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켓과 달리, 화면에서 가장 잘 보이는 것은 바로 의류다.
이제 선수들은 하나의 독립된 브랜드가 되었다. 단순히 ‘유니폼을 입던’ 챔피언의 시대는 끝났다. 오늘날 그들은 하나의 세계관, 스토리텔링, 로고를 구현한다.
자신만의 로고를 처음 가진 이는 페더러였다. 나달과 조코비치가 뒤를 이었고, 이제 알카라스와 시너가 그들을 따라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대부분의 선수들이 출전 대회의 상금보다 마케팅 파트너십에서 더 많은 수입을 올린다는 사실이다. 테니스 경제는 그렇게 짜여 있다. 승리보다 이미지를 더 잘 팔 수 있는 구조다.
예를 들어 조코비치가 윔블던에서 우승하면 300만 달러를 받는다. 그런데 라코스테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만으로 조코비치는 1년간 그 세 배를 번다.
페더러 역시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그의 마케팅 수입은 해마다 8,000만 달러를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유니폼은 이제 핵심 비즈니스가 되었고, 때로는 가장 중요한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다.
시장의 거물들: 초대형 계약과 극적인 결별

노박 조코비치는 의류 계약이 급격히 치솟아 스폰서 교체까지 필요해졌던 전형적인 스타 사례다.
2009년, 그는 세르지오 타키니와 10년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이 곧 문제로 변했다.
그가 너무 많은 대회를, 너무 빨리 우승한 것이다. 판매량은 급등했지만, 브랜드는 이를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이탈리아 브랜드는 챔피언의 성적에 따른 보상금을 지급할 수 없어 2년 만에 계약을 파기했다.
조코비치는 2012년 유니클로로 옮겼다가, 2017년 연간 약 9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으로 라코스테에 안착했다.
여기에 아식스와의 신발 계약이 더해진다. 전 세계 1위 출신의 발을 책임지는 대가로 연간 400만 달러 수준이다. 총합적으로 세르비아인은 현재 한 해 약 2,500만 달러를 스폰서십으로 벌어들이고 있다.
페더러: 10년에 3억 달러
옛 라이벌 로저 페더러의 사례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의 스폰서 교체가 이전 파트너인 나이키와의 불화에서 비롯되었다.
2018년, 스위스인은 미국 기업을 떠나 스포츠 역사상 가장 큰 규모 중 하나인 계약을 체결한다. 유니클로와 10년간 3억 달러. 결코 가볍지 않은, 그러나 그리 자발적이지도 않았던 결정이었다.
“그의 오랜 파트너였던 나이키가 그를 버렸습니다.”라고 그의 에이전트 토니 갓식이 나중에 털어놓았다.
더 아픈 부분도 있다. 그는 나이키 소유였던 전설적인 ‘RF’ 로고를 뒤에 남겨두고 떠나야 했다. 스포츠계에서 가장 강력한 로고 중 하나가 빼앗긴 것이자 상징적인 상처였다.
빅3의 마지막 한 명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라파엘 나달은 13세 때부터 계약한 장비 스폰서 나이키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이 변치 않는 관계 덕분에 스페인 선수는 연간 1,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이제는 상징이 된 자신만의 로고—마나코르의 황소(나달의 별명)를 형상화한 뿔—를 소유하게 됐다.
시너와 알카라즈로 미래를 선점한 나이키

하지만 나달과 페더러는 이제 은퇴했다. 나이키 입장에서는 엄청난 손실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 기업은 이미 미래를 확보해 두었다.
새로운 물결은 이미 황금 같은 가치를 지닌다. 카를로스 알카라스와 얀니크 시너는 새로운 판매 머신이다. 나이키와 다른 브랜드들은 이를 잘 이해했다. 이들의 SNS 영향력과 성적이 그들을 순식간에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계약 규모는? 각자 연간 1,500만~2,000만 유로 수준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선배들처럼 개인 로고가 보너스로 따라온다(알카라즈의 로고는 2026년 호주오픈에서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설명이 된다.
브랜드 전략, 계약, 그리고 유망주의 쟁탈전
이러한 ‘꿈의 시나리오’는 다른 브랜드들에게도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모두가 자신만의 알카라즈와 시너를 갖고 싶어 한다. 그 열망은 12세가 되기 전의 유망주들과도 계약을 맺을 정도다.
SNS는 가시성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고, 한 번 바이럴을 탄 주니어 선수는 단 한 번도 투어 본선에 오르지 않았더라도 스폰서를 끌어 모을 수 있다.

전 세계 주니어 1위 출신 디안 파리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주니어 서킷에서 뛰기 시작하자마자 아주 어린 나이에 아식스와 계약을 했어요.”
이것만이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샤라포바는 11세에 나이키와 첫 계약을 맺었고, 코코 고프는 14세에 뉴발란스에 합류했으며, 비너스 윌리엄스는 겨우 15세에 리복에서 1,200만 달러 계약을 따냈다.
"일부 주니어를 영입하는 것보다 조코비치와 계약하는 게 더 쉽다"
점점 흔해지는 이 현상은 브랜드 입장에서는 종종 골칫거리가 되기도 한다. 유망주와 협상하는 일이 스타 선수와 협상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노박 조코비치와 계약하는 것이 어떤 주니어 선수들과 계약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습니다. 그는 비전에 대한 감각이 매우 뛰어나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요.”라고 아식스 컨설턴트 마리나 카이아조는 Tennis Legend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여기에 가족의 압박은 대개 엄청나다. 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보장받길 원하고, 브랜드는 선수를 묶어 두고 싶어 한다. 그리고 아직 어린 선수들은 본의 아니게 마케팅 도구가 되곤 한다.
불평등: 스타와 그 밖의 선수들
마지막으로, 브랜드들이 한 선수 혹은 한 여자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졌지만, 일단 계약을 맺고 나면 그 이후는 어떨까? 계약 조항은 어떻게 구성될까? 모든 선수가 같은 권리를 보장받을까?
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투어의 몇몇 챔피언들은 1년에 참여해야 할 화보 촬영과 이벤트의 상한선을 조항으로 넣을 수 있고, 유니폼과 신발 선택권을 가지며, 브랜드와 밀접하게 협업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선수에게는 (항상)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그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규칙을 따라야 한다.
- 브랜드의 독점 착용, 요구되는 화보 촬영 참석, 미디어 및 SNS 관련 의무 사항 준수. 이를 어길 경우 ‘착용 미이행’ 혹은 ‘가시성 부족’을 이유로 패널티를 받을 수 있다.
끝없이 치닫는 경쟁?
이처럼 선수와 브랜드의 관계는 시즌이 바뀔 때마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테니스 거물들은 예전에도 보수를 받았지만, 오늘날처럼 많이 받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처럼 커리어 초반부터 거액을 벌어들이지도 않았다.
테니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노출되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큰 돈이 오가는 스포츠가 되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테니스와 그 주인공들을 진정한 마케팅 상품으로 만드는 이 흐름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이는 테니스에 좋은 일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불가피한 ‘필요악’일 뿐인가? 그 과정에서 거의 2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이 스포츠의 ‘영혼’을 잃어버리지는 않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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